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요한복음 6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사람들은 영과 혼과 육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전도서 12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흙은 사람의 육체가 흙으로 지어졌으므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창세기 3 19절에서『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2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우리말 생령은 영어로『살아있는 생명체(niv), 살아있는 혼(kjv)』으로 번역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히브리어로『네피쉬하이』라고 한다. 그런데, 헬라어로는 푸쉬케로 번역된다. 사람이 죽으면,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하나님이 코에 불어넣으신 것이 영이다. 생기는 히브리어로 네샤마(호흡)라는 단어다. 누가복음 8장 에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죽은 소녀를 살리는 내용이 나온다. 8 55절에서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는 것과 그 영이 돌아오는 것은 같은 것이다. 헬라어로 푸뉴마가 돌아왔다. 푸뉴마가 돌아와서 푸쉬케가 되었다. (푸뉴마)이 흙에 들어가면 푸쉬케(네피쉬하이)가 된다. 즉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서 영혼, , 혼이라고 혼란스럽게 번역되어 있다. 우리말 번역이 한자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이렇게 번역이 된 것같이 보인다. 그래서 정확하게 헬라어로 정의하자면 영과 흙이 만나면『살아있는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과 혼과 육을 이분법, 삼분법으로 이야기 할 의미도 없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죽으면 영과 육이 분리되어 각자의 길로 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영과 흙의 결합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영과 혼을 분리한다는 것은 혼에서 영이 빠져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혼이라는 실체는 사라지고 흙인 육만 남는 것이다. 따라서 영과 혼의 분리는 죽음을 나타내지만, 분리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2-4절에서『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장막이라는 말은 집이나 몸의 형체를 말한다. 헬라어로 소마라고 하는데, 요한이 예수님의 몸을 성전으로 표현하면서 몸의 형체라는 말을 사용했다. 몸의 형체는 영을 담고 있는 몸을 말한다. 고린도전서 15 44절에서도『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그래서 영의 몸은 영을 담는 몸을 의미한다. 고린도후서 5 1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우리의 장막 집은 육체를 의미한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영의 몸을 의미한다. 만일 하늘로부터 오는 집인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벗은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5 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영이 육체에 있을 때는 하나님과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영의 몸을 입을 줄 알고 있으므로 담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있던 영이 물질세계에 이주해서 주와 따로 있지만, 영의 몸을 입어 주와 함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의 몸으로 거듭나는 자는 주와 함께 있는 것이다. 원래 두고 온 하나님 나라의 장막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 10절에서『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이 나그네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레위기 25 23절에서『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히브리서 11 14-16절에서도 나그네임을 설명하고 있다.『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본향으로 돌아가는 주체는 영이다. 흙으로 된 인간이 아니라 생명체인 인간 속에 있는 영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처럼, 하나님을 떠나온 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6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영이 흙에 갇혀있으므로 영이 죽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돌아가기 위해서는 벌거벗으면 안된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은 그림자다. 하나님 나라의 옷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창세기 2 25절에서『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하나님의 장막을 떠난 자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벌거벗었지만, 임시로 하나님이 흙으로 입혀주신 것이다. 그래서 영은 영의 옷을 입어야만 한다. 예복을 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왕의 혼인잔치에서도 비유의 말씀으로 예복을 말씀하셨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말씀하셨다. 영의 옷이 바로 영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옷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마다 영의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영의 몸을 입기 위해서는 육의 몸(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요한계시록 3 18절에서도『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흰옷이 그리스도의 옷이며, 거듭난 자의 영의 몸이다.

죽은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을 가둔 육의 몸이 죽어야만 한다. 영이 죽은 상태를 옥에 갇힌 자, 눈먼 자 등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갇힌 자를 풀어주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하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흑암에 있는 자를 빛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이런 은혜를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살리는 것은 영이 육은 무익하니라』라고 말씀하셨으면, 이 말씀에 대해서 집중해야 하는데, 무관심하고, 육체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다. 영이 육체 속에 있으므로 죽은 상태이다. 예수님이 영을 살리러 오셨다는 말씀이다.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육신의 장막이 무너져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자는 육신의 장막을 벗는 것이다. 하나님은 육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영에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오는 양식이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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